PART1 장애의 옷을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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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자립생활 활동가 박정혁 씨
ⓒ 프로메테우스 강서희 |
나는 뇌성마비 1급의 장애인이다. 단 한 번도 걸어본 기억이 없다. 아내 또한 지체장애 1급의 장애인인데 나와는 달리 중간에 장애인이 된 ‘중도 장애인’이다. 아내는 27세까지 비장애인으로 살았다고 한다. 감기 바이러스에 의한 경추손상, 2년여 동안 갖가지 검사 끝에 의사들이 밝혀낸 그녀의 병명이다.
병명이 밝혀진 후,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은 이제부터 중증의 장애인으로 살아야합니다!” 그녀로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다.
“이 아이는 재활을 해도
더 이상 가망 없습니다.”
두 살도 되기 전, 심한 고열로 아기의 몸이 뒤틀리는 현상이 일어난다. 울음소리에 깜짝 놀란 할머니가 아기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 열 내리는 주사를 맞혔다. 하지만 아기에 몸 뒤틀림 현상은 여전했고 결국 아기는 뇌성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아기의 부모는 아기가 여섯 살이 되자 당시 최고의 재활교육 시설인 S재활원으로 아이를 입원시켰다. 부모로서는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아이는 그곳에서 물리치료 등 재활치료와 초등교육을 받았다. 아이가 4학년 교육을 마치던 겨울의 어느 날, 아이의 부모는 재활원 담당자와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재활원 담당자는 아이의 부모에게 말했다.
“…….”
경제사정이 넉넉지 않은 아이의 부모로서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후 아이는 줄곧 제 방에서 동생이 학교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세월이 가고 아이의 몸은 소년의 몸으로 성장했지만 소년으로서 누려야할 모든 해택에서 장애인이란 이름으로 제외되었으며 그 어떤 희망도 가지지 못했다. 소년에겐 단지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소년의 친구였으며 과거 속, 역사의 인물들이 소년의 스승이 되어 주었다. 소년은 상상 속에 그들과 만나는 것이 즐거웠다. 그 속에서는 자신의 장애를 초월해 상상 속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걸을 수도, 뛸 수도, 때로는 무한한 힘의 소유자가 되어 악당들을 멋지게 해치우고 악당의 손아귀에서 구출한 연인과 창공을 비행할 수도 있었다. 소년은 그렇게 상상력을 키웠다. 하지만 현실은 소년을 철저히 외면했다.
아버지의 사업이 잘 되어 큰집으로 이사했지만 소년에게 주어진 삶에는 변화가 없었다. 소년의 친구는 여전히 책 속의 주인공이었고 TV 속 세상 안에서만 살았다. 소년에게 가장 가까운 곳은 맥가이버가 활동하는 무대였고 가장 먼 곳은 소년이 살던 집주변이었다.
소년이 성년으로 성장할 시기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소년의 어머니는 소년에게 많은 것들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였다. 책 속 세상과 벗하게 한 것도 어머니였으며 아이가 재활원을 퇴원할 무렵 아이 아버지에게 졸라 아이의 휠체어를 마련한 것도 그랬다. 꽃피는 봄이면 아이를 집 앞 마당으로 데리고 나가 꽃의 향연을 만끽하게 했으며, 여름이면 시원한 물에 아이를 담가 햇빛의 포근함을 알게 했다. 그리고 겨울이면 하얗게 응고된 작은 눈사람을 집안으로 불러들여 아이에 친근한 벗이 되게끔 해준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이제 소년에게서 실낱같이 열려진 세상의 문조차 닫혀졌다.
속절없는 세월이 갔다. 9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 경제위기가 닥쳤고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1호가 하늘로 솟을 무렵, 아버지가 경영하던 회사의 문을 닫아야 했다. 빚잔치로 집이 넘어갔고 장애인인 내가 갈 곳은 강원도 깊은 산골에 장애인시설 뿐이었다.
“철원으로 가겠어요.”
아내는 의사에게서 장애판정을 받은 후, 하루 종일 술을 마셨다고 한다. 술을 그때 처음 마셨는데 맥주 한 상자 가까이를 마시고 사흘 동안 깨어나지 못했단다. 그녀는 그 후, 모든 것을 정리했다. 직장에서 번 돈은 그동안의 병원비로 전부 소진했고 결혼을 앞둔 약혼자와도 결별을 선언했다. 병원비가 다 떨어진 그녀에게 의사는 선택을 강요했다.
“죄송하지만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환자분께서 가 계실 수 있는 세 곳을 알아봤습니다. 첫 번째는 국립재활원이고 두 번째 목사님 부부가 운영하는 모 요양원, 마지막으로 모 구청 관할의 S재단의 E장애인요양원입니다. 참고로 E장애인요양원은 강원도 철원에 있습니다.”
아내는 모든 것을 전부 포기하고 숨어살기로 결심했다. “철원으로 가겠어요.”
| 박정혁 뇌성미비 1급 장애인, 장애인자립생활 활동가이다. 1970년생으로 2003년 7월부터 2년 6개월간 피노키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간사로 활동해왔다. 자립생활 3년차에 접어든 그는 2004년 12월 지영씨와 결혼해 살고 있다. 현재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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