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아톤’ 주인공 배형진 “비현실적 장애인정책에 회사 그만뒀다

경기도 하남시 광암동의 기타 부품 생산업체 ㈜진호. 녹음으로 우거
 
진 쾌적한 환경에 자리잡고 있는 이 중소기업은 기타 줄 조임새를
 
만드는 평범한 회사였다. 그러다 2005년 영화 ‘말아톤’이 공전의 히
 
트를 기록하고 영화의 실제 주인공 배형진(24)씨가 이 회사에 다니
 
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배형진씨는 한국육영학교를 졸업하던 2003년 진호에 입사했다. 중국에도 생산공장을 갖고 있는 진호
 
는 연간 매출액이 60억~70억원 규모. 2006년 매출액은 65억원. 제품의 95%를 수출하는 진호는 직원 7
 
2명 가운데 31명이 발달장애인(자폐아)이다. 신체장애인을 고용하는 업체는 많지만 발달장애인을 이
 
처럼 대규모로 고용하는 회사는 매우 드물다. 최병채 사장은 2001년부터 서울 송파구 장지동에 있는
 
정서장애인 특수학교 한국육영학교 졸업생을 고용했다.

진호를 유명하게 만든 배형진씨가 지난 5월 19일자로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 측은 경영난을 이유로
 
당초 발달장애인 31명의 부모에게 구조조정안을 통보했다. 회사 측이 제시한 두 가지 안은 ▲5월 중
 
테스트를 거쳐 10명 내외를 정리해고하거나 ▲정리해고를 하지 않는 대신 임금을 현행 79만원에서 50
 
만원으로 낮추는 것이었다.

발달장애인을 둔 부모들은 두 가지 안을 놓고 회사 측과 한 달 이상 힘겨운 줄다리기를 해왔다. 배형
 
진씨의 어머니 박미경씨는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퇴사를 결정했다. 박미경씨는 “그래도 상대적
 
으로 형편이 좋은 형진이가 먼저 그만두는 게 다른 사람이라도 구제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설령 정리해고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도 나가겠다는 얘기였고 실제로 5월 19일 사직서를 썼
 
다.

최병채 사장은 2005년 언론 인터뷰에서 “발달장애인을 100명 고용해 대표적인 장애인 고용 성공사례
 
기업이 되는 소망을 갖고 있다”고 말한 사람이다. 사장실 벽면 책장에는 최 사장이 배형진씨 가족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해 노무현 대통령 내외와 찍은 기념사진이 놓여 있다. 이런 최병채 사장이 왜 정리
 
해고와 임금삭감이라는 칼을 빼들어야 했나. 회사 측이 내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재무구조 악화다.


결론부터 말하면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5월 19일 정리해고 대신 ‘임
 
금삭감’안을 수용했다. 부모들과 회사 측의 갈등은 일단 수면 아래
 
로 들어갔다.

그러나 재무구조 악화의 근본 원인을 따져 들어가면 장애인 복지정
 
책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숨어 있다. 최병채 사장은 “발달장애인 한
 
사람을 고용하려면 회사에서 별도 비용으로 50만원 이상이 더 들어
 
간다”면서 “30명으로 계산하면 한 달에 1500만원, 1년에 1억8000만원이 든다”고 말했다. 최병채 사장
 
은 “2억원 가량의 돈을 매년 충당하다 보니 재무구조가 계속 나빠지고 있어 이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현재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업주는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으로부터 ‘장애인고용촉진 장려금’을 받는
 
다. 장려금은 2001~2002년에는 임금의 150%를 지급받았다. 2003년에는 장려금이 임금의 100%로 줄
 
어들었다. 그러던 장려금이 2004년부터는 다시 30만~60만원으로 하향조정됐다. 진호의 경우는 2004
 
년부터 월 50만원을 지급받고 있다.

 
50만원의 장려금을 받고도 왜 회사 측은 별도 비용이 발생한다고 주장했을까. 진호 측에 따르면 장려
 
금 50만원 중에서 4대 보험료, 주민세, 법인세 등을 제외하고 나면 20만원 정도가 남는다. 진호 측은
 
“장애인 1인당 30만원 이상이 들기 때문에 매달 장애인 고용에 따른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밝
 
혔다.

그렇다면 왜 장애인고용촉진장려금이 점차적으로 줄어들게 되었을까.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의 한
 
관계자는 “2004년 이전 장려금의 수준이 너무 높아 일부 사업주의 경우 임금의 100% 이상을 보전해
 
줌으로써 임금 부담 없이 정부 지원금에만 의존해 장애인을 고용하는 일이 생겼다”고 설명한다. 이렇
 
다 보니 일부 영세 사업장에서는 중증장애인에게 지급하는 실제 급여보다 장려금 지원금액이 오히려
 
많은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측은 이러한 불합리한 제도적 모순
 
을 방지하고 장애인 고용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유도하기 위해 제도를 고쳤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개별 사업장의 현실을 외면한 탁상공론 행정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진호에
 
서는 장려금 축소가 직접적으로 발달장애인들의 고용 환경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행 장애인고용촉진법은 발달장애(1~3급)와 지체장애(1~2급)를 통틀어 중증장애인으로 분류한다.
 
최병채 사장은 “지체장애인(1~2급)과 발달장애인(1~3급)을 똑같이 중증장애인으로 대우하는 게 문
 
제”라고 주장한다. 최병채 사장은 “지체장애인은 사실상 정신 상태는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업
 
무에 익숙해지면 보통 사람과 똑같이 일할 수 있지만 발달장애인은 사정이 전혀 다르므로 차등적으로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복지법상 장애 분류체계는 의학적 원인에 의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제약
 
을 받는 기준에 따라 지체장애인은 1~6급으로 분류된다. 이 중 1~2급은 중증장애인으로 분류한다.
 
발달장애인의 경우는 1~3급까지로 분류되어 모든 등급이 중증에 해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장애인
 
등급분류는 보건복지부 소관사항이다.

선진국에서는 중증장애인 중에서도 발달장애인에 대해 최고의 제도적 지원을 해준다.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근위축증을 앓고 있지만 휠체어와 첨단 컴퓨터 기기를 이용해 물리학 분야에서 누구보
 
다 훌륭한 업적을 남기고 있다. 연세대 컴퓨터공학과 3학년생 신형진씨는 척추성 근위축증을 앓고 있
 
지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동료 학생과 똑같이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본다. 단지 시험 볼 때 시간이
 
더 걸릴 뿐이다.

발달장애인과 지체장애인, 어느 쪽이 더 심각한가. 우리나라에서는 진호 측 주장처럼 차등대우를 하
 
지 않는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측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직업적인 능력이나 근로 능력을 판정
 
해 장애 기준을 구분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대신 한국장애인
 
고용촉진공단에서는 작업지도원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작업지도원제도란 발달장애인과 같이 근무 습
 
숙(習熟) 기간이 길고 직장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중증장애인 고용사업주에 대해서는 월 60시간 이상
 
작업지도 실시에 대해 70만원의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장애인 복지전문가들 역시 장애인 고용정책이 의학적 능력이 아닌 직업적 능력을 기준으로 재조정되
 
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사렛대학 인간재활학과 유애란 교수는 “지체장애인의 경우 재활보조공학기구
 
를 통해 장애를 극복하고 일정기간 직업 재활이 이뤄지면 직업적인 면에서 더 이상 장애가 아니며 그
 
의 직업적 능력은 최대한 지속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면서 “반면 발달장애인이나 정신지체의 경우 직
 
업적인 능력에서는 항구적인 장애”라고 진단한다. 유애란 교수는 또 “장애인의 직업능력을 기준으로
 
국가적인 직업 재활 및 고용정책이 수립되어 이들의 고용 창출과 유지, 일정 임금 유지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30명의 부모들은 일단 정리해고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는 사실에 일단 한숨 돌리고 있
 
다. 부모들 대부분은 재계약에 합의했지만 회사 측의 처사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 Y씨의 설
 
명이다.

“아이들의 손에 굳은살이 박여 있다. 손에 굳은살이 박이려면 물집도 잡혀야 한다. 오랜 시간 반복적
 
인 일을 할 때 굳은살이 생긴다. 이건 아이들이 회사에 가서 놀지 않고 일만 한다는 뜻이다. 회사 측은
 
‘20만원의 가치’밖에 안 된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것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책정이다. 오전 9시
 
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고 시간당 3340원을 받는다는 얘기다.”

어머니 B씨도 비슷한 말을 한다.  B씨는 “우리가 여러 번 공장에 가서 봤지만 아이들이 일을 잘하고
 
있는데도 그렇게 대접 받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B씨는 또 “하고 싶은 말이 목까지 차
 
지만 내 아이가 그렇기 때문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생각은 이렇게 하면서도 자신들의 주장을 회사 측에 공개적으로 전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
 
들이 약자이기 때문에 부모들 역시 약자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 Y씨는 “적자 폭 증
 
가는 경영자의 책임이므로 아이들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지난 5월 19일 회사 측과 재계약에 합의했다. 부모들이 회사 측이 제시
 
한 두 번째 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계약기간은 1년. 잘못된 장애인정책은 그대로 놓아두고 미봉책으
 
로 수습한 것이다. B씨는 “우리 애들이 거길 나와도 받아줄 데가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한
 
다. 진호에서는 비현실적인 장애인정책으로 인해 발달장애인과 그 부모들이 남몰래 눈물을 흘리고 있
 
다. ▒

/ 조성관 차장대우 mapl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