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아 아비의 철학, “장애인공화국을 봤어요.” |
| 장애인교육지원법 반드시 제정되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어 |
[위드뉴스] 입력시간 : 2007. 03.29. 11:34 |
97년 한빛이란 이름의 사내 아기가 태어났다. 3.8kg을 자랑하던 건강한 아기. 두 달이 지나 불행이 닥쳐왔다. 세균성 뇌수막염에 걸린 것. 왼쪽 뇌는 손상되어 기능을 상실했으며 지금 오른쪽 뇌마저 죽어가고 있다.
올해 11살이 된 한빛. 사람들은 한빛을 심하면 하루에 열 번도 간질을 하는 정신지체아로 알고 있다.
실제 한빛은 ‘간질의 종합판’이라 할 정도로 온갖 간질 증상을 다 갖고 있다. 게다가 그 동안 여러 차례 의학적 사망선고를 받고 기적으로 살아났으며, 의사마저 “더 이상 손쓸 수 없다”고 포기한 상태다.
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어떠할까? 한빛의 아버지인 최석윤(45세) 씨를 만나 장애아의 현실과 이 현실을 바라보는 부모의 솔직한 생각을 들어본다.
자식이 장애를 안고 있다면 부모라면 누구나 마음이 힘들 것 같습니다.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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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처나, 나나 애가 장애가 있다 해서 끙끙거리거나 우울해하진 않아요. 집에서 애 문제로 많은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처는 처대로, 한빛인 한빛대로, 나는 나대로 삶을 즐기며 살다가 문제가 생기면 모여 함께 대화를 나눈다고 할까요.
모르는 사람은 의외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장애아의 부모들은 항상 노심초사하거나, 아이의 정상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줄 아니까요.
우리 부부는 이렇게 생각해요. 한빛이 장애를 가진 건 아이의 탓이 아니니, 네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요. 대신 길 걷다가 넘어져 다치는 것 정도는 우리가 막아주겠다고 한빛에게 말했어요. 한빛도 알아듣는 것 같았고요.
장애아를 둔 다른 부부조차 그런 마음은 먹기 힘들 것 같은데, 특별한 계기 같은 것은 있었습니까?
난 한빛이가 오래 살 것이라고 믿어요. 하지만 의사들은 언제나 한빛이 언제 사망할지 모른다는 예언을 하곤 하죠. 하지만 아들은 키도 크고(137cm), 점점 더 건강해지고 있어요. 하긴 이런 책을 읽은 적은 있어요. 몇 살 못 되어 죽을 거라고 선고받은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나간 사연이죠.
의사의 예견은 넘겼지만 아이는 어른이 되지 못했어요. 죽었으니까요. 난 한빛의 운명이 어찌되든 그 동안 억압적 환경이 아닌 자기 뜻대로 사는 자율적인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한빛을 양육하면서 에피소드는 없었습니까. 가령, 돌발행동을 하여 곤란해진 경우?
한빛이 학교에 있거나 방과 후 학교에 있지 않으면, 언제나 같이 있다 보니 늘 겪는 일이 간질이나 돌발행동이지요. 보통 버스나 지하철에서 많이 발생해요. 악악 소리를 지르거나 도로에 누워 일어나지 않는 등.
우리에겐 대수롭지 않은 일이에요. 무관심한 척 하면 자기가 지쳐 안 하거나 혹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느껴 중단하니까요. 이를 못 참고 어떤 사람이 마치 때릴 듯 한빛을 쏘아보아 내가 그를 쏘아본 적도 있었지만요.
한빛은 몇 학년이고, 어느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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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인데 이제 1학년이에요. 신내동에 있는 봉화초등학교에 다녀요. 학교에선 처음에 애 입학을 반대했지요. 다 고발하겠다고 항의한 뒤에야 열흘만에 특수학급을 만들어주더군요. 2시간은 특수학급에서 특수교육 보조원과 있다가, 2시간은 원반에서 수업을 받아요. 보조원은 교육청에서 1명을, 자활센터에서 1명을 지원하고 있어요.
차별은 교육에서 시작되는 것이거든요. 장애아라고 해서 통합교육을 받지 못해서 발생하는 것이지요. 한빛인 비장애아들과 급우가 되어 생활하다보니, 어울린다는 점에서 매우 자연스러워요. 급우들도 한빛일 따뜻하게 안아주고, 학부모들도 열린 마음으로 한빛일 바라보고 있어요.
자식에 대한 교육철학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평소 어떻게 교육을 하고 있습니까?
특별한 교육은 없어요. 한빛의 눈높이에 맞추고, 애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뿐입니다. 생활 속에서 사람을 만나고, 가급적이면 자연 속에서 뛰어다니는 것 정도. 비슷한 장애를 가진 부모들은 자식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3-4개의 치료 교육을 시키고 있어요. 이 때문에 애들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요.
우린 한빛에게 특별한 교육을 안 시키니 교육비가 크게 안 들고, 한빛 또한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지요. 생각해보세요. 치료교육이라고 하지만 이것이 치료인지, 교육인지 구분이 안 되고 있어요. 치료면 의료보험 혜택을 받도록 해야 하고, 교육이면 공교육의 틀 안에 넣어야 하는데 이도저도 아니거든요.
어울림을 특히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유라도?
어울려야 소통이 되니까요. 사람을 만나면 서로 통해야 하고, 서로 관계를 맺으려면 말짓손짓 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소통이지요. 사람들과 많이 어울린 한빛의 소통방식은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휠씬 나은 기대를 낳고 있어요. 적어도 싫다, 좋다는 분명히 표현하지요. 또 부모의 진심은 확실히 알고 있어요.
진심이라면, 예를 들자면 어떤 것을 뜻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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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매를 들 때죠. 이렇다 할 상황이 못 되어 한빛의 돌발행동을 멈추고자 할 땐 ‘안 돼’라는 걸 분명히 말해줘요. 그래도 안 되면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때립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악의, 최선의 방법이에요.
아이가 겁을 먹으면 내가 무릎을 꿇고 애의 눈을 바라봐요. “미안해. 아빠는 널 사랑해”라고 말하면서요. 그럼, 한빛이 울면서 내게 안겨요. 자기도 사랑한다면서요.
나는 어디서든 한빛을 꼬옥 안아줘요. 스킨 쉽을 자주하면 교감이 전달되니까요. 대화를 해야 하는데 대화가 잘 안 되니 더 많이 스킨 쉽을 하는 편이고요.
특별한 교육을 안 시킨다고 해도 생활고가 적지 않을 것 같은데?
장애아를 키우는 집의 생활비는 다른 집의 1.5배가 더 많이 들어요. 그러니 매달 1.5배가 적자인 셈이지요. 어쩔 수 없이 맞벌이를 해야 해요. 처도 직장엘 다니고, 나도 작은 기획사를 운영하지요. 그러나 24시간 한빛과 붙어 있어야 하기에 돈벌이는 시원찮아요.
이 점에서 정부정책이 아쉬워요. OECD 국가네, 선진국이네 하지만 부부가 수입이 있으니, 수급권을 줄 수 없다고 하니 참 당황스럽지요. 정기적인 검사 때문에 찾는 병원비용만 해도 ‘돈 먹는 하마’인데, 장애아 양육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축소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장애인참교육학부모회의 회원인 줄 압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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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부터 시작했어요. 중랑통합부모회라는 모임을 알게 되어 찾아다니다가 지금의 부모회를 알게 되었어요. 당시는 장애인 교육과 관련하여 장애인과 학부모의 대중 시위가 많았던 때라서 저절로 상황 인식을 하게 되었지요. 대한민국이란 땅에 소외받는 ‘장애인 공화국’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그러다 작년 9월에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삭발식도 했어요. 특수교육보조원의 확대와 특수교육지원센터의 제자리 찾기를 위한 시위였지요. 싸우니까 우리의 요구가 관철되더군요. 아직 예산 배정이 안 되어 실행에는 시간이 더 걸리지만요.
부인께서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집엔 거짓말을 했어요. 마침 한빛이 병원 검사차 머리를 깎았는데 아들에게 용기를 주고자 같이 머리를 깎았다고요. 11월쯤 들통났지요. 누군가가 삭발식을 찍은 신문기사를 보여줬다고 하네요.
사실 처는 94년 해직교사를 돕는 후원회에서 만난 사이에요. 같이 집회도 나가곤 했지요. 그래서 한빛과 같은 장애아의 문제를 풀기 위해 내가 사회운동을 할 거란 걸 처도 예상했었어요. 그러나 한 푼 더 벌어도 아쉬운 상황에 내가 이러니...
지난 3월 26일부터 교육권연대 소속 장애아 학부모들이 인권위원회 사무실을 점거하고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습니다. 학부모들은 교육부의 특수교육진흥법 전부 개정안의 한계를 지적하며, 장애인교육지원법의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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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교육지원법은 법적 강제력을 갖지 않은 권고 수준의 법이지요. 장애 영유아에 대한 교육적, 복지적 지원 조항이 부족하고 게다가 장애인 대학생과 장애 성인의 평생 교육에 대한 지원조항도 없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법이 아니라, 정부에게 필요한 법인 셈이지요.
하지만 장애인교육지원법은 장애/비장애아의 완전 통합과 장애인에게 가장 적절한 교육 지원 및 장애인 교육 수혜율 100% 달성을 의미해요. 장애인이 교육의 대상이 아닌 교육 주체로서 참여하는 기회 또한 보장하고요.
그런데 정부는 이 법의 제정을 미루다 못해 지난해 5월 발의된 장애인의 교육지원에 관한 법률안조차 사문화하려고 해요. 우리 아이의 미래를 위해 부모가 목숨 걸고 단식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발달장애, 정신지체, 자폐, 간질 등 어떤 종류든 장애를 가진 자식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이를 위해 ‘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애아는 온갖 차별을 다 받아요. 이런 차별 행위가 있을 때마다 당당히 지적하고, 개선하기 위해 작은 행동을 할 때 비로소 아이의 돌발행동이 줄어들면서 부모와도 피드백이 되지요. 부모의 자신감이 아이의 존엄성인 것이에요.
또 치료교육에 매달릴 게 아니에요. 부모회의 어머니들은 한결같이 장애아는 중학교 2학년만 되면 치료교육이 필요가 없다고 말해요. 달리 말하면, 아이가 우리가 느끼는 것과 동일하게 느끼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지요. 서로 기대치가 다르지요. 아이들은 이 상태에서도 행복할 것이 많으니까요. 답답한 마음을 가진 건 부모일 뿐이에요.
교육이란 천천히 가도 좋다고 봐요. 죽기 전까지 애에게 줄 수 있는 건 꾸준히 같이 다니면서 많이 보여주고,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행복이란 늘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이니 애써 행복해질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여유란 노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지요.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것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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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윤 씨는 인터뷰를 위해 직접 위드뉴스의 사무실까지 찾아왔다. 그것도 두 차례에 걸쳐. 첫 날은 인터뷰 도중 방과 후 학교에서 한빛을 데리고 집에 가야 한다면서, 둘째 날은 비가 옴에도 시간을 내어 와주었다.
그와의 대화는 누구라도 값진 지혜를 건져 올린다. 중증 장애아를 키우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도 넉넉한 마음을 가진 게 도리어 초인적으로 보일 정도로.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에게 최석윤 씨의 이야기가 보탬이 되길 기대한다.
이훈희 기자 bara@withnews.com 이훈희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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