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그곳은 ‘선한 사람들’에 의해 ‘복지’가 행해지고 있다고 믿었던 수많은 사회복지법인과 시설이다. 물론, 모든 사회복지법인과 시설이 생활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설 폭력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였으며, 폭력을 행사한 시설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 끝날 문제도 아니다. 왜 장애인에게 시설은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든 가기 싫은 곳''으로 전락하게 되었을까? 어째서 복지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인권의 사각지대''로 변해버린 것일까? 지난 3월 26일 ''성람재단비리척결과사회복지사업법전면개정을위한공동투쟁단''은 서울역 광장에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촉구하는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시설의 민주화를 부르짖고 있는 것이고 또 시설의 민주화가 장애인의 인권과 삶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 시설인권연대 김정하 활동가를 만나 시설 생활인들의 삶과 장애인차별금지법(아래 장차법) 및 사회복지사업법(아래 사복법) 개정에 대한 얘기를 나눠본다. 장애계의 화두였던 장차법이 3월 6일 임시국회를 통과됐다. 장차법 통과는 장애계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시설 장애인들에게 미칠 영향력은 무엇인가? 5년 전쯤 장차법이 만들어지는 초기 과정에서 ‘과연 우리 손으로 만든 법이 제정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렇게 통과되어 기쁘다. 장차법이 장애인 차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장차법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미국의 장애인법(America with Disabilities Acts, 아래 ADA법)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었다. 2005년 미국 일리노이주에 갔을 때, 대형 시설에 사는 장애인들이 주지사를 상대로 각종 소송을 벌이고 있었다. 인간이 가져야 할 보편적 권리를 가지지 못하고, 시설에서 평생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는 소송이였다. 이때 근거가 된 것이 미국 ADA법이였고, 놀랍게도 각종 소송이 승리를 거두면서 시설 정책은 괄목할만한 변화를 맞이했다. 주와 정부가 대형시설을 폐쇄하고, 자립생활을 보장하지 않으면 막대한 손해배상을 해줘야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 과정은 시설 생활인들의 복지정책을 다시 연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뒤 미국의 시설 정책은 어떻게 변했나? 미국의 모든 시설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대형화된 시설을 우선 폐쇄하고 다른 주거 방안들을 마련하는 방법이 모색됐다. 정신장애인과 정신지체장애인들을 제외한 장애인 대부분이 모두 탈시설화되었다. 당시 일리노이주는 복지수준이 49위였다. 매우 낮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던 것은 ADA법 때문이였다. 한국도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시설에 있는 많은 장애인들이 장차법을 근거로 더 나은 삶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길 바란다. 시설 장애인의 인권 침해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들은 시설 안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시설 장애인들은 거주, 입주, 퇴소 뿐 아니라 외부 소통과 관련한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다. 또 성폭력과 신체폭력, 학대, 감금 등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폭행의 경우 사망에 이르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노골적이든, 간접적이든 ‘폭력’이 시설 안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시설 관리자들이 쉽게 휘두를 수 있는 폭력은 언어폭력이다. 어떤 장애인은 언어적 폭력이 신체 폭력보다 더 싫다고 말하더라. 특히, 정신지체장애인은 폭력에 쉽게 노출되는데, 아이 취급하며 벌을 세우거나 감금하는 경우가 많다. 김포 사랑의 집 사건의 경우 정신과 전문의 처방이 필요한 약을 처방 없이 강제로 먹여 생활인들이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이런 직접적인 폭력도 많지만, 폭력 여부가 발각될 경우 비난의 여론을 받기 때문에 요즘은 간접적인 폭력 사례가 종종 보고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간 관리자를 내세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또 생활인들 사이에 위계질서를 만들어 그들 스스로 통제하게끔 만든다. 이들 사이에서 폭력행위가 일어나면 관리자는 책임을 피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고 있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가두거나 굶기는 폭력도 급증하고 있으며, 성폭력도 시설 폭력에서 두드러지는 범죄다. 정신지체 장애인은 사회든, 시설이든 성폭력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설 성폭력의 특징이 있다면? 한 사람의 피해자와 여러 사람의 가해자가 있는 경우, 여러 사람의 가해자와 여러 사람의 피해자가 있는 경우, 관리자가 특정 생활인을 성폭행하는 경우가 있다. 운영자의 성폭력을 모방하여 남자 시설인들이 또 피해자를 성폭행하기도 한다. 피해자들 대부분이 장기적으로 성폭행에 노출된다. 만약 한 장애여성이 성폭행을 당했다면 그는 다른 사람의 성폭행에도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피해자가 임신하면 중절수술을 시키거나, 강제로 불임 수술을 시켜 계속 성폭행하는 경우도 있다.
가해자의 범죄 유형을 살펴보면, 시설인들이 외부의 모든 것과 차단되어 있다는 점을 이용해 정신지체 장애여성에게 머리 핀을 사주고, 먹을 것을 사주며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 뒤 성폭행을 가하는 행동양식을 보인다. 정신지제 장애인의 성폭행은 다른 성폭행 범죄와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를 걱정하기도 하고, 가해자를 좋아하기도 한다. 그들은 시설장을 어버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시설장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성폭행을 성폭행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김포 사랑의 집 시설장의 처벌이 어려웠던 이유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당시 검찰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를 걱정하는 태도를 보였고, 때문에 검찰은 이건 ‘성폭행이 아닌 화간’이라고 주장했다. 사법부가 장애인의 특성과 삶을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이런 사법부의 무지 때문에 말도 안되는 판결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성폭행에 계속 노출되면서도 성폭행을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시설이라는 삶 자체가 가져오는 한계 때문이다.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존중 받지 못한 삶, 물건 하나 자신의 마음대로 소유할 수 없는 삶의 구조들. 이렇게 그들은 철저한 폐쇄적 공간 속에서 그들의 보호 의무자란 사람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 시설 생활인의 인권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해야 할까? 먼저 시설인의 외부 소통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언어장애가 없는 장애인이라도 이런 문제를 외부로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없다. 편지도 검열당하고, 전화기는 사무실에만 있다. 휴대폰은 아예 소지를 금하고 있다. 아니, 휴대폰을 소지할 방법조차 가르쳐 주지 않는다. 면회는 감시당하고, 외출은 금지시킨다. 시설 폭력은 자원봉사자들이 갔을 때 간신히 알게 되어 외부에 알려지는 방법말고는 없다. 시설 생활인들의 프라이버시권도 중요하다. 한 성인 장애남성이 말하기를 시설에 여성자원봉사자가 방문하여, 말없이 옷을 다 벗기고 닦고 목욕을 시켜준다는데, 수치감과 모멸감을 느낀다고 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시설을 방문하면 아무런 동의 없이 생활인들의 나체를 찍고 그대로 보도한다. 또 종교의 자유도 문제다. 하루 네 번씩 예배를 드려야 하는 시설도 있다. 금식 기도를 강요당하고, 철야 예배도 강요당한다. 종교의 자유는커녕 시설 생활인의 의지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것이다.
시설 생활인들은 365일, 24시간 스스로 선택하고 고민할 시간이 없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식단, 정해진 프로그램으로 살아간다. 프로그램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수년을 하루 종일 벽만 보고 살아가는 장애인들도 많다. 그들은 스스로 사고하고, 경험하고, 선택하는 삶을 살아갈 수 없다.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세상과 차단되어 살아간다. 시설병증후군은 아직 우리나라에는 구체적으로 연구되지 않은 부분인데, 외국에는 이에 대한 논문도 발표되고 연구도 진행되었다. 시설병증후군과 관련해 재미있는 일례로 호주에 이런 사례가 있다. 한 시설에 등이 굽은 벤치가 있었는데, 그 벤치를 자주 이용한 한 노인의 등이 10년 뒤 벤치 형태 그대로 굽었다는 얘기다. 시설에는 사람이 없다. 그저 사람이 시설의 모든 것에 철저히 맞추어진다. 시설을 조사하러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시설 생활인들은 모두 자신을 무능력하고 무가치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장애나 어릴 적 가족에게 버려진 경험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설장이 이런 사실을 주입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들은 ‘너는 무능력한 존재라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여기에서 평생 살아야 하기 때문에 말 잘 들어야해’라고 가르친다. 훈육이란 목적으로 그들을 관리하기 쉬운 존재들로 만드는 것이다. 내가 물었다. “당신은 꿈이 뭔가요? 뭘 원하고 있나요?”라고. 그들은 이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꿈과 희망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심지어 “좋아하는 음식을 달라고 요구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는 다 깜짝 놀라더라. 시설 생활인들 대부분이 ‘무엇을 좋아한다’거나, ‘무엇을 요구’는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그래서 “뭘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당황하는 것이다. 시설은 사람을 황폐하게 만들고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그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며 헌법에 보장된 기본적 권리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시설장들은 말한다. “너는 외출할 수 없어. 왜냐면 길을 잃어버릴테니까”라고. ＊기사 계속 이어집니다. 김지현 기자 withnews@withnews.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