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장애인 참교육 서대문ㆍ은평 부모회 김혜미 어머니를 만나다

강서희 기자

TV시리즈 <그래이 아나토미> 시즌2가 지난해 10월부터 3달간 KBS 2TV에서 방영됐다. 혹시 <그래이 아나토미>에는 레지던트 말년차이며 인턴들의 트레이너를 담당한 임신한 흑인여성 미란다 베일리의 성우 목소리를 기억하는가? 아니면 지난해 방영한 어린이 만화 <구슬대전 배틀비드맨>에서 흥분하면 몸이 변하는 다혈질 캐릭터인 산초의 목소리는?
두 목소리 모두 성우 김혜미 씨의 목소리다. 그녀는 잘나가는 성우이자, 세 자녀를 둔 엄마다. 그런데 김혜미 씨는 다른 엄마들과는 조금 다르게 사는 평범하지 않은 엄마다. 한 번도 소외계층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김혜미 씨가 장애인교육운동에 뛰어들면서 삶이 변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는 성우라는 직업에 ‘장애인 참교육 서대문ㆍ은평 부모회’ 회장이라는 직책이 더해졌다.
2년 전 교육청 앞에 친 천막을 기억하나요?


	△ 2004년 10월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삭발식에 앞서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는 김혜미 어머니 ⓒ 프로메테우스 강서희

2004년 10월 28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4명이 삭발을 했다. 장애인교육권 보장을 주장하며 삭발하는 그들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 광경을 함께 보던 다른 사람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일부는 장애인 당사자였고, 일부는 장애아동을 둔 부모였다. 삭발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성명서를 낭독하던 한 김혜미 어머니가 있었다.
“서울시 교육청 그대들이여, 우리들의 삭발은 그대들이 그동안 지회조차 주지 않았던 장애인의 교육권이요 인권이다. 이 삭발은 그대들의 장애인교육에 대한 무지와 차별과 폭력이 만들어낸 것이다.”
김혜미 어머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는 절실함이 담겨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육청은 이들의 요구를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는 △전체교육예산대비 6%까지 장애인교육예산 확대, △유치원, 고등학교 특수학급 증설 및 설치, △특수교육보조원 확대 배치, △장애성인 교육기관(장애인야학) 전면 지원 등을 요구했고, 일부 수용됐다. 그러나 그 다음해까지 요구사항이 모두 시행되지 않았고, 다시금 서울시교육청 앞에 천막을 쳤다.
지금 다시, 국회 앞에 천막을 치다
이번에는 국회 앞이다. 장애인교육권연대가 지난 2월 5일 국회 앞에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이번 임시 국회에서 ‘장애인의 교육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교육지원법)이 통과되어야 한다며, 천막을 쳤다. 장애인교육지원법은 지난해 5월 2일 국회에 발의됐다. 이 법안은 민주노동당 최순영, 열린우리당 이미경, 한나라당 나경원, 민주당 손봉숙 의원의 공동대표발의로, 국회의원의 76% 225명의 동의 서명으로 발의됐다. 국회 입법 사례 중 전례가 없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반년이 넘게 상임위원회 회의에 안건으로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지난 22일 장애인교육지원법은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됐다. 본격적으로 법안에 대한 심의가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제출한 특수교육진흥법 전부개정안은 아직 검토조차 되지 않았고, 2월 임시국회가 3월 6일이면 끝나기 때문에 장애인교육지원법이 이번 회기 내 처리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부모들은 천막을 치고 시민들에게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의 중요성을 알리고 1인 시위도 펼치면서, 국회 교육위원들과 지역구 의원들을 만나고 있다. 국회의원들에게 정부안보다 장애인교육지원법 주요내용들이 최대한 반영되어야 한다고 설득하기 위해서다.
셋째를 생각해본 적 없었다는 그녀


△ 김혜미 어머니는 “정부에서 셋째를 나면 지원해 준다고 하지만,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은 동생을 낳을 생각을 전혀 못한다”고 말한다. ⓒ 프로메테우스 강서희

거의 1년간을 잠수 탄(?) 김혜미 어머니가 다시 천막 농성장에 나타났다. 뒤늦게 셋째를 출산하고 나타난 그녀의 표정은 이전과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김혜미 씨에게는 고등학교 2학년인 첫째,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둘째, 태어난 지 막 6개월이 된 셋째, 이렇게 세 명의 자녀가 있다. 그 중에서 둘째가 발달장애(자폐증)를 가지고 있다.
“정부에서 셋째를 나면 지원해 준다고 하지만,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은 동생을 낳을 생각을 전혀 못해요. 활동보조서비스나 도우미제도, 가족뱅크 등이 잘 되어 있으면 상관없는데, 그런데 아니니까 모든 서비스를 부모가 책임져야 하잖아요. 그래서 장애인교육지원법은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어요.”
집이 위치한 서대문구는 청소년 수련관에서 장애아동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어서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 청소년 수련관에는 초중고등학생을 위한 체육프로그램도 있고, 주말에는 장애아동과 함께 하는 사람연대 인연맺기학교도 열린다. 그래도 방학 때가 되면 부족하기 마련이다.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둘째가 다니는 곳에는 월수토에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화목에는 없다. 그래서 화목에는 미술선생님이 집으로 온다.
김혜미 어머니의 하루 일과는 둘째를 중심을 짜여있다. 일주일에 1~2번은 방송국에서 일을 하지만, 아이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날은 데려다 주고 데리고 와야 한다.(학기 중에도 마찬가지인데, 아침에는 주로 아빠가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다른 집 엄마들이 도와준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셋째를 첫째에게 맡기지 못할 때는, 들쳐 업고서라도 둘째를 데리러 간다. 다른 엄마들은 그녀에게 과잉보호라고 하지만, 성폭력이 난무한 세상에서 대처능력이 떨어지는 둘째를, 특히 여자 아이를 길에 그냥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인권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5~6년 전에는 서대문복지관 부모회장을 했어요. 아무것도 몰랐을 때였는데, 그러다가 장애인참교육부모회에 몇 번 참석하다가 발기인이 됐어요. 그때 부모회장 할 때는 복지관에 프로그램 더 만들고, 수강료를 낮춰달라고 요구하고 그런 일을 했거든요. 발기인이 되었어도 잘 몰랐으니까요. 심지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학교에 특수반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아이를 동네유치원에 보내고 싶었단다. 집에서 가까운 데를 보내고 싶었는데, 동네유치원에서 모두 입학을 거부했다. 그래서 홍제동성당 유치원에 가서 ‘종교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서마저 우리 아이를 안받아주면 어쩌냐’고 호소하며 설득해서 보냈다. 그러다가 장애인교육권 보장을 요구하며 인권위 점거농성에 참여했고, 늦게 배운 ‘장애인교육권 투쟁’은 밤새는 줄 모르고 계속됐다.
“너무 열악하구나, 우리 아이의 권리를 내가 찾아줘야겠다는 열의에 불탔어요. 한번 시작한 것은 끝장을 보자는 성격인데, 2005년에 처음 시작했으니까. 집에서 식구들이 함께 도와줬으니까 가능했던 거고요. 그런데 투쟁은 익숙해졌는데, 어깨의 짐은 더 버거워요. 이제 아니까, 앞으로 어떻게 가야하나 고민도 많고…. 앞으로 아이가 크면서 직업교육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겠지요. 고등학교 때부터 직업교육을 연계시켜 해야 하고 지역마다 직업재활 작업장 등을 마련해야죠. 아이가 커서 시설에서 산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으니까, 지역에서 살아나가야 하니까 지역 주민 의식 개선도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장애인을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동등한 입장을 봐야한다고 생각해요. 동정과 시혜가 아니라, 더불어 살게 하는 마인드가 필요한 거죠.”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위원회 점거와 관련한 국가인권위원회 안경환 위원장에게 보내는 메시지’에서 “인권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라는 국가 인권기구를 가졌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인권국가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현실”이며, “국가인권위원회를 5년 내내 점거해서 지금의 현실을 바꿔내고 중증장애인의 삶의 질을 한 발짝 전진시킬 수만 있다면 저희는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김혜미 어머니는 이 글에 대해서 “장애인권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강조했다.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은 흘린 피가 많아서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어쩌면 거리에서 소리 높여 외치고 투쟁해서 장애인교육지원법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장애인 교육이 모두 제대로 보장받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국가가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이라고 바라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장애인교육지원법을 통해 장애인의 교육현실이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지고, 지금과는 다른 환경을 갖출 수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