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몇 시에요?”
20일 오후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국무총리 면담을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던 중 실신해 서울 저동 백병원으로 옮겨진 방순애씨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지금이 몇 시인지 물었다. 그리곤 “우리 애 학교 갔다 올 시간이 다 됐는데”라며 울산 집으로 전화부터 걸었다. 엄마의 관심사는 오로지 아이였다. 오후 4시, 학교에 간 아이는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
![]() |
△ 경찰 연행 중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진 방순애씨.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
방순애씨는 울산에서 중학교 1학년인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서울에 ‘시위하러’ 왔단다. 울산 아줌마가 서울까지 와서 웬 시위냐고? 방씨 아이가 발달장애를 가졌기 때문이다.
“서울까지 시위하러 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떤 마음으로 오신 거예요?”라고 묻자 방씨는 “다 새끼 때문이죠”라고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불법시위를 했다거나 오늘처럼 경찰에 연행된 일은 한번도 없었단다. “장애인교육지원법 만들라고.. 정부가 약속을 안 지켜서..” 방씨는 말을 맺지 못하고 오른쪽 팔에 통증을 호소했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도 춥다며 턱을 떨었다.
보다 못해 옆에 서 있던 심재익씨가 말을 거들었다. 심씨는 울산에서 7살 난 정신지체아를 키우는 아빠로, 방씨와는 울산장애인부모회에서 함께 활동해 친분이 있는 사이다.
심씨는 “국무총리께서 얼마 전에도 장애인 교육 지원을 위한 법 제·개정을 서두르겠다고 약속했고, 전 교육부총리도 올해 내로 법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까지 아예 법안도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에서 약속을 어긴 것입니다. 정부 사람들이 이렇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우리 장애아 부모들이 더이상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눈길이나 돌아오겠습니까?”라고 하소연했다.
장애인교육지원법은 지난 5월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이 국회의원 229명의 동의를 받아 대표발의한 법안이다. 국회 입법 사상 가장 많은 의원의 동의를 받은 법안으로 기록됐다. 이렇게 국회의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장애인 교육이 열악한 탓도 있었지만 장애인, 장애인 부모, 교사 등의 눈물겨운 투쟁도 밑바탕에 있었다. 장애인교육권연대는 지난 3월 국가인권위원회를 50일간 점거하고 38일간 단식농성을 하며 장애인교육지원법안을 홍보해 나갔다. 단식 33일째 김진표 당시 교육부총리와 면담이 이뤄졌고, 김진표 전 교육부총리는 면담에서 장애인교육 관련 법 제·개정의 필요성에 동의하며, 올해 7월까지 정부에서도 관련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제출한 법안과 장애인교육지원법안이 국회에서 함께 논의돼 올해 안에 법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11월 현재까지 정부안은 제출되지 않았고, 장애인교육지원법안만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잠자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이 울산에서 서울까지 장애아 부모들이 올라오게 된 이유다. 교육부 관계자는 정부안 제출이 늦어지게 된 이유에 대해 정부가 ‘장애인종합지원대책’ 등 원래 예정에 없던 정책들을 내놓으면서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또한 정부안 제출은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심사 등 거쳐야 할 절차가 많아, 장애인 부모들이 시위하는 맘은 이해해도 현재로써는 어쩔 수 없다며 부모들의 양해를 구했다.
 |
△ 지난 13일 정부중앙청사 앞 시위 모습. 이날 장애인 부모 20명이 연행됐다.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
 |
| △ 20일에는 국무총리 면담을 요구하며 정부중앙청사 정문에 밧줄을 묶고 시위하던 장애인부모 46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
하지만 장애인교육권연대는 교육부의 이런 입장에 대해 핑계에 불과하다며 맞서고 있다. “정부가 진정 ‘장애인교육’에 대한 혁신과 집행의지가 있다면 국무총리의 특단의 정치적 입장만으로도 충분히 정부입법시기가 단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입법절차나 촉박한 시간보다 정부와 교육부의 장애인교육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심재익씨도 “장애인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자”라며 “정부 고위관계자들이나 교육부장관이 장애인 교육 외에도 할 일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우리의 요구는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심씨는 약자를 위한 일이 가장 우선순위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답답해했다. 법안 제·개정이 늦어질수록 당장 교육을 받아야 하는 내 아이와 부모 자신, 그리고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와 비장애 아이들만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장애인교육지원법이 제정되면 어떻게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느냐?”고 묻자 심씨는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도 차별받지 않고 교육받고, 인간으로서 존엄성이 지켜지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아이가 자라서 이 사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메일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