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1년 중 반은 농성장에서 농성을 하며 보내는 것 같다"는 구교현 사무국장 ⓒ 프로메테우스 임세환 |
“1년에 반은 천막농성을 하면서 보내는 것 같아요.” 추석날 밤에 서울시교육청 앞, 천막농성장에서 만난 구교현씨(30)의 사정이다. 추석인데 집에는 들렀다가 왔냐고 물었더니 “아침에 차례만 치르고 농성장에 왔다”고 한다. 부모님이 좋아하시지 않았겠다고 재차 물으니 “그래도 어쩔 수 없죠. 해야 할 일인데”라고 대꾸한다.
구교현 장애인참교육학부모회 사무국장은 추석날 밤을 군산대학교에서 올라온 대학생 이창준씨(장애인, 사회복지학과 2학년)와 함께 천막농성장에서 보내고 있었다. 서울이 집인 이창준씨도 명절에 집에 못(?)가는 건 마찬가지다. “오늘 부산 갔다 왔는데 집에 안 들르고 천막으로 바로 왔죠”라며 웃는다. 명절 연휴 끝나기 전에 다시 군산으로 내려가야 할 텐데 부모님 계신 집에는 언제가나 싶었지만, 묻지는 못했다.
1년의 반을 넘게 천막농성장에서 보내는 삶은 고달프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장애인교육권연대의 서울시교육청 앞 천막농성장은 벌써 22일째 그 자리에 서 있다. 농성은 서울시교육청이 2년 전 장애인 학생들의 학부모들과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서 시작됐다. “학급을 증설하는 것, 특수교사 수를 확대하는 것 등을 2년 전에 약속했는데 지키지 않았죠. 이유도 설명 안하고 모르쇠에요.” 구교현 사무국장이 서울시교육청을,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을 상대로 불만을 터뜨린다.
“대화도 안 될 거 같냐”고 물으니 명절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인 수요일에 교육감이 천막을 찾았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화 못해서 미안하다고 다음 주부터 협상을 시작하자고 그러더군요. 2년 전의 약속을 깬 것부터 미안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다음 주라고 이야기한 건 교육청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되기 때문일 거예요. 장애아동들이 이 문제로 등교를 거부하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국정감사에서 당하기 싫어서 다음 주 전에 천막을 자진철거해주기를 바라겠지만 어림없습니다.”
 |
| △ 농성장 안을 밝게 꾸며놓은 소품들. 구교현 사무국장은 "왼쪽의 작품은 장애아동들이 농성하는 부모님들을 위해 직접 만든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 프로메테우스 임세환 |
농성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다운 말이다. 그래서 결국은 연휴는 스스로 반납하고 천막을 오가며 지키는 게 일이 됐다. 구교현 사무국장의 등 뒤에는 300명에 달하는 서울시 장애인 학생들의 학부모가 있다. 그들이 농성장을 함께 만들고 함께 지키고 함께 싸우고 있어서 든든하다. 그 부모들의 아이들, 그러니까 학령기의 장애인 아동들도 구교현 사무국장에게는 든든한 후원자다. “오전에는 어머니들이 오셔서 천막에서 추석 차례를 지냈어요. 방송국 카메라도 왔었는데 방영은 안 됐어요.” 방영이 안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커 보였다. 천막농성 중이라는 것을 한번이라도 더 세상에 많이 알리는 것도 결국 천막지킴이의 몫이 아니겠는가.
![]() |
 |
| △ 서울시교육청 앞에 위치한 장애인교육권연대 농성장 ⓒ 프로메테우스 임세환 |
장애인 당사자의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수년 전부터 꽤 성장했다. ‘요구안이 받아들여질 거 같냐’고 물으니 “싸워봐야 알죠. 또 받아들인 다음에 약속을 지키는지도 봐야 하고...”라는 말이 돌아온다. 쉽게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기에 구교현 사무국장은 천막농성과 천막농성을 이어가면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장애인 인권이 더 향상되기 위해서는 정신지체 장애인의 교육권 등 권리문제가 앞으로 많이 이야기되어야 한다”는 걱정 어린 전망을 듣고 있으니 이 사람은 내년에도 추석을 천막농성장에서 보내겠구나 싶었다. 내년 한가위가 구교현 사무국장에게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을 수 있으려면 세상이 그만큼 빨리 평등해져야 할 일인데, 쉽지 않을 일이다.
한가위에도 집에서 쉬지 못하고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은 장애인교육권연대 뿐만은 아닙니다. 종로구청 앞에서도 성람재단 비리 해결을 촉구하는 장애인들이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고,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는 장기파업 사업장 노동자들을 비롯해, 여러 개의 사연 있는 천막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없는 사람에게 억울하고 부당한 일들이 더 많이 벌어지는 세상이라는 게 더 뼈저리게 느껴지는 한가위입니다. 모든 농성장을 찾아가보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농성장에 있을 모두에게 전하며, 맑은 하늘에 둥둥 뜬 보름달이 올해는 세상에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들을 잘 듣고 굽어 살펴주셨기를 기원합니다.
<프로메테우스 가족 일동>
|
메일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