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9.28 23:22

“2년 전이나, 지금이나”…장애아父 교육청 앞 삭발

약속지키지 않는 서울시 교육청…서울시교육청 앞 농성 2주째

김유미 기자

2004년 10월 28일 장애인, 장애학생 부모, 학교 교사 등 7명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삭발을 했다. 장애인의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장애인 교육 예산을 확보하고, 장애인이 통합교육을 받을 수 있게끔 특수학급을 만들어달라는 것 등이 이들의 요구였다. 장애인 부모들이 소복을 입고 투쟁하고,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25일간 농성을 벌이자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에 조금 못 미친 2006년 9월 28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장애인 부모 2명이 또 삭발을 했다. 공정택 교육감이 2년 전 약속한 장애인교육지원 계획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 않아 장애인의 교육환경이 그다지 개선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가 서울시교육청 앞에 다시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한지도 2주가 넘어가고 있다.

△ 2년전 장애인교육권 보장을 요구하며 삭발했던 김경애, 박문희씨가 장애아 아버지 둘의 머리카락을 잘라줬다.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서울시에 사는 등록 장애아동 수는 4만명, 그러나 학교에 다니고 있는 장애학생들은 1만여명에 불과하다. 등록 장애학생을 비롯해 특수교육적 지원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은 훨씬 더 많다. 무려 3만여명의 장애학생들이 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게 21세기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야만적인 현실이다.”- 장애아 학부모들의 투쟁결의문
이날 삭발한 박인용, 최석윤씨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버지이다. 2004년에 삭발을 했던 어머니 두 분이 이들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아직 두 어머니의 머리카락이 삭발 전처럼 자라지 못했다.


△ 삭발하고 있는 최석윤(사진 왼쪽), 박인용씨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박인용씨는 ‘추석도 다가오는데 꼭 삭발해야하느냐’는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삭발을 결심했다. 12살 난 발달장애아의 아버지인 박씨는 “잘린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겠지만 한 번 잃어버린 아이의 교육권은 지금 되찾지 않으면 다시 찾을 수 없다”며 “장애아를 둔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투쟁하고 항거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삭발 이유를 밝혔다.
또 다른 삭발자인 최석윤씨는 정신지체가 있는 아이를 키우고 있다. 최씨는 “우리의 요구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이 계속 지금과 같은 행태를 보인다면, 서울시 교육감은 퇴진의 대상이 될 것이고, 서울시교육청은 타도의 대상이 될 것”이라며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기 바란다”고 경고했다.
“학교 현장에서의 장애인 교육차별은 온갖 사회적 차별의 단초이다. 사회적 통합을 가르치고, 약자에 대한 우선적 고려를 가르쳐야 하는 학교 현장에서의 장애인 차별은 모든 차별의 시작이요, 약자에 대한 배제를 전 사회영역으로 확산시킨다.” - 장애아 학부모들의 투쟁결의문
이처럼 장애인 부모들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교육청은 이들과 면담이나 협상도 제대로 진행하고 있지 않다.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가 천막농성을 시작한지 2주가 되도록 면담 한 차례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장애아 학부모들은 “장애학생들에게 한 약속도 저버리고, 면담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서울시 교육감은 과연 서울 공교육 수장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서울시교육청 특수교육 담당자는 28일 <프로메테우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교육청 내부에서 서울교육권연대의 요구에 대해 의견을 모으고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년 전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 당시와 상황이 다르다. 예산 수반 등 현재 실행을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답했다.
삭발식에 참석한 신석준 희망사회당 대표는 “2004년에 서울시교육청과 합의하고 농성을 접을 때 장애아부모들과 ‘이제 우리 아이도 교육받을 수 있겠구나’하며 웃으며 인사했던 것이 기억난다”고 전했다.
신 대표는 “교육청에서는 약속 한 번 하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며 “자기 자식 문제라면 10년, 100년이 지나도 끝까지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부모들”이라고 말했다.

장애인교육지원법안이 국회에서 잠잔다. 왜?

이날 삭발식에는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이 참석했다. 최 의원은 “여러분들의 투쟁을 통해 발의된 이 법안이 현재 국회 교육상임위에서 잠자고 있다”며 “분노해야 한다”고 말했다.


△ 장애인교육지원법안을 발의한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지난 5월 최순영 의원은 국회의원 229명의 동의를 받아 장애인교육지원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장애인교육지원법안은 장애인, 장애인 부모, 교사 등으로 구성된 장애인교육권연대가 2003년부터 전국을 돌며 장애인교육 주체들의 의견을 수렴해 만든 법안이다. 장애인계에서는 현재 장애인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특수교육진흥법의 한계를 뛰어넘어, 장애를 이유로 한 교육차별을 해소하고 장애유아에서 장애성인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 걸친 교육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법이 될 것으라 기대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준비 중인 특수교육진흥법 전면개정안이 제출되면, 병합 심사를 거쳐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최순영 의원은 “장애인교육지원법안이 국회의원 229명의 서명을 받아 발의될 수 있었던 것은 전국에서 농성하고 투쟁해 준 여러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여러분들의 투쟁을 통해 발의된 이 법안이 현재 국회 교육상임위에서 잠자고 있다. 분노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국회에서 장애인교육지원법이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한나라당이 사립학교법 재개정이나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 문제를 놓고 국회를 파행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 의원은 현재 국회 교육위원회는 한나라당 의원들로 인해 소위원회도 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최 의원은 “사립학교법은 비영리를 추구하고 공공성을 가져야 할 사학재단이 학생 하나하나를 돈으로 보고 있는 문제를 바꾸겠다고 내놓은 법”이라며, 하지만 한나라당은 이 법의 재개정을 주장하며 국회를 파행으로 이끌어 다른 법안 처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의원은 “장애인교육지원법이 제정되면 더 이상 여러분들이 아스팔트 위로 나와 삭발을 하거나 굶지 않아도 될 것”이라며 이번 정기국회 내에 장애인교육지원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국회 안에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