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대한민국 헌법이 사기처럼 들렸던 날

언론 자유 침해기 - 취재하는 사람을 왜 연행하나?

김유미 기자

△ 경찰이 농성자들을 강제 연행하고 있다.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30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활동보조인 서비스에 대한 예산 확충을 요구하는 장애인단체들의 ‘대정부 투쟁 선포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들은 2시간가량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난 후, 그 자리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 농성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천막을 치고 약 30분쯤 지나자 경찰은 이 집회가 변질돼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에 위반된다며, 해산을 명령했다. 하지만 집회참가자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천막을 지키기 위해 천막 주위를 에워쌌다. 경찰은 이후 약 3차례 해산 명령을 더 했고, “작전이 시작되면 다칠 위험이 있으니 취재 중인 기자나 학부모, 학생 등은 밖으로 나와달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경찰의 작전과정에서 기자가 다칠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면, 기자는 오히려 더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런 작전이라면 기자뿐만 아니라 집회참가자들에게도 충분히 위험할 것 아닌가. 경찰의 작전과정, 시위자 연행과정을 반드시 취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농민 전용철씨와 건설노동자 하중근씨가 집회 중 경찰의 강경진압에 다쳐 결국 목숨을 잃었다. 경찰이 말한 대로 누군가 ‘다칠 위험’이 있는 작전이라면, 아예 시작부터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취재 중에 끌려나오다
집회 주최 측에서 천막 옆에 주차해 놓은 봉고 차량 위에 올라갔다. 그 위엔 이미 2명의 독립미디어활동가가 올라가 촬영하고 있었다. 차량 위에 올라가고 얼마 되지 않아, 경찰은 집회참가자들을 강제로 연행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저항하는 집회참가자들과 경찰들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났고, 휠체어를 타고 있던 일부 장애인들은 경찰에 의해 휠체어 아래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전경들은 학부모와 대학생 등 비장애인들을 먼저 연행했고, 중증장애인을 보조하는 활동보조인들도 연행했다.

△ 전경들이 봉고차 위로 올라와 독립미디어활동가에게 위험하니 함께 내려가자고 했다.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 취재를 방해하지 말라며 강하게 저항하자 전경들이 이 활동가의 사지를 들고 차 아래로 끌어 내렸다.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이후 경찰들은 천막에 둘러놓은 현수막을 찢어 걷어내고, 천막 안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기 시작했고 봉고차 위에 3인은 제 각각 열심히 촬영했다. 그런데 갑자기 봉고차 위로 전경 세 명이 올라오는 게 아닌가. 기자님들이 위험하니까 함께 내려가잔다.
그러면서 가장 가까이 있던 독립미디어활동가 A씨(여)의 양팔을 잡았고, A씨는 “취재 중이니 방해하지 말라”며 항의했다. 그러자 전경들은 A씨의 양팔과 다리를 붙잡고 봉고차 아래로 강제로 끌어 내렸다.
A씨가 끌려 내려가고 전경들은 독립미디어활동가 B씨(남)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연행을 시도했다. B씨는 “집회 참가자가 아니라 취재 중”이라며 항의했고, 결국 전경들에 들려 끌려 내려갔다. 내려다보니 봉고차 앞 유리가 박살이 났다.

△ 봉고차 위에 있던 취재진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차 앞 유리가 다 부서졌다.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이제 내 차례인가? 앞서 연행돼간 둘과 마찬가지로 취재 중인 기자라고 신분을 밝혔다. 그래도 일단 위험하니 내려가잔다. “위험하면 알아서 내려가겠다”며 버텼지만, 역시 소용이 없었다. 전경 둘이 다가와 양 팔을 붙잡았다. 그래서 “그냥 내려갈 테니 건들이지 말라”고 하고 봉고차 아래에 있던 여경의 도움을 받아 아래로 순순히(?), 비겁하게 내려갔다.
내려가자마자 여경 한 명이 왼쪽 팔을 잡고는 닭장차(경찰수송버스) 앞으로 데려가며 미란다원칙을 읊었다. “기자라니까요”라고 쏘아붙였지만 일단 가잔다. 닭장차 앞에 도착. 앞서 붙잡혀간 A씨와 B씨가 닭장차 문 앞에서 “탈 이유가 없다”며 저항하고 있었다. “기자한테 이럴 수 있느냐”, “취재권을 보장하라” 등등 여러 이유로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닭장차 앞에 있던 종로경찰서 형사에게 물었다. “우리가 왜 끌려 내려와야 하는 것이냐”고. 묵묵부답이던 형사는 저항하는 B씨를 향해 “기자인지 아닌지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고 했다. 그리고 본 기자도 어서 태우란다. 어이가 없어 기자증을 내밀었다. “자, 저 기자 맞는데요. 왜 취재를 방해하는 겁니까”. 형사는 말없이 기자증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보내줘”라고 했다. “아니요. 왜 취재를 못하게 하냐니까요!”, “저 사람들(미디어활동가)은 왜 연행하는 겁니까?” 따위의 말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곧바로 전경 두, 세 명이 달라붙어 집회 장소 밖까지 데려갔다. 밖으로 밀려나는 기자에게 한 전경이 “또 들어왔다가 잡혀 나오지 말고 들어오지 마세요”라고 했다.
밖으로 나오니 방패를 든 전경들이 집회장소를 겹겹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당연히 안이 보이지 않았다. 싸우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계속되는 취재방해
더 이상의 현장 취재는 불가능하다고 판단,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빠져나와 사무실로 향했다. 세종문화회관 앞을 지나는데, 집회참가자들을 태운 닭장차가 멈춰 섰다. 그리곤 함께 취재를 하다 연행돼 간 독립미디어활동가 A씨와 B씨가 시민들을 향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저희는 집회현장을 취재하고 있던 기자들입니다. 경찰들이 취재를 방해하더니 이렇게 강제로 연행하고 있습니다!” 그 버스 안에는 A씨와 B씨 외에 2명의 독립미디어활동가가 더 타고 있었다. 취재 중이던 활동가 넷이 연행되고 있는 것이었다. 똑같이 취재를 하고 있었지만 기자증을 가진 나만 치사하게(?) 풀려난 것이었다.

어쨌든 연행은 되지 않았지만, 경찰의 취재 방해는 한 차례 더 있었다. 시설인권연대 활동가로부터 연행되는 차량 안에서 중증장애인 한 명이 갑자기 실신했다는 제보를 받고, 그 장애인이 탄 차량을 뒤쫓았다. 종로경찰서 앞에 닭장차가 섰고, 대기하고 있던 119 요원이 닭장차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전 사망한 하중근씨가 생각나고,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중증장애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닭장차 문 앞에서 나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이 장애인보다 먼저 전경 둘이 뛰어나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진 찍지 마시랍니다”. 전경들이 온 몸으로 나와 카메라를 밀어내고 있는 사이, 실신한 중증장애인이 119 요원들의 손에 들려 차 밖으로 나왔다. 옆에 있던 시설인권연대 활동가가 전경들을 말려준 덕분에 사진 몇 장을 찍을 수 있었다. 이 장애인은 병원으로 후송돼 간단한 조치를 받고 경찰서로 다시 연행돼 갔다.

왜 취재를 막은 것일까? 경찰 이래도 되나?
집회취재 경험이 많았지만 나는 이날 사건으로 적잖이 당황했고, 화가 났다. 경찰청에 조사를 걸어 내가 경찰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이 아닌지 확인을 했다. 경찰청 정보국 조사과 담당자는 현장에 있지 않았던 관계로 상황 파악이 어렵다고 전제한 뒤 “기자와 집회는 별개다”라고 했다. 그는 “취재의 자유가 있는데, 경찰이 기자들에게 해산하라고 명령하기는 어렵다. 작전에 들어가게 되면 다칠 위험이 있으니까 자리를 피해달라고 양해를 구한 것이라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현장에 있던 경찰이 기자에게 ‘해산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위험하니 나와달라’고 했지만, 경찰은 기자가 취재 중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연행을 시도했다. “집회현장에서 시위자들과 기자가 구분이 안 되니까 취재진들을 모두 연행하려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경찰이 기자증을 제시한 본 기자만 연행하지 않고, 함께 취재했던 독립미디어활동가들은 모두 연행했다고 하자 “취재진이 집회 장소에 섞여 있으면 시위대와 구분이 안 돼 연행했을 것”이라고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기자증’을 가진 기자에게만 허용된 언론의 자유
그렇다면 결국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 취재할 권리는 대한민국 국민 중 기자증을 가진 기자에게만 허용되는 것인가?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제4조에는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 및 질서유지인은 특정인이나 특정단체가 집회 또는 시위에 참가하는 것을 배제할 수 있지만, 언론기관의 기자는 그 출입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단 이 경우 기자는 신분증을 제시하고 기자임을 표시한 완장을 착용하여야 한다고 나와 있다.
결국 현장에서 기자증을 밖으로 보이지 않고, 기자 완장을 하지 않으면 시위대로 판단, 연행할 수도 있는 셈. 하지만 그렇다면 기자증도 기자완장도 가질 수 없는 독립미디어활동가들의 취재할 권리는 어떻게 보장을 할 것인가.
대한민국 헌법 제 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의 자유를 가지며, 언론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나온다. 또 현재 대한민국의 TV와 신문 등은 시청자 제보와 같은 언론참여 활동을 권장하고 있다. 모 인터넷 신문에선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고 이야기하며 풀뿌리 언론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카메라를 들고 취재 중인 이들을 ‘기자증’을 가진 기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연행하다니. 결국 이날 독립미디어활동가들에 대한 취재방해와 연행은 대한민국 국민의 언론의 자유, 취재의 권리를 제한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