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장애아 출산 원천봉쇄 정책을 비난한다" |
| 부모는 장애아를 낳아 기를 권리가 있다 |
[위드뉴스] 입력시간 : 2006. 08.11. 01:15 |
세 아이가 있는 가족이 있는데, 첫째 아이는 시각장애아, 둘째는 청각장애아, 셋째는 결핵환자였다. 어머니 역시 결핵환자. 이윽고 네번째 임신을 하게 되었다. 이 경우 당신은 두 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
하나는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검사와 양수 검사 등을 거쳐 태아가 장애를 가졌는지를 파악하는 것이고, 만약 기독교인이라면 열심히 기도를 하는 것이다.
기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애아를 낳았다면, "기도하지 않아 장애아가 태어났으니 기도 열심히 하라"는 이상한 충고를 듣게 되기 때문. (장애아 낙태 없는 사회를 꿈꾸며, 이창열 목사 / 함께가는공동체교회 담임, 위드 뉴스, 2003. 10.20.)
장애아를 낙태시키기 위해 작동되는 산부인과 병원의 각종 검사기계
초음파 검사를 하였는데, 장애아인 걸로 간주가 되면 산모는 충격을 받게 된다. 이쯤에서 낙태를 생각하기 일쑤. 최종 결과인 양수결과에서도 장애아인 것으로 간주되면 거의 100% 낙태를 하게 된다. 이와 관련된 통계는 없지만, 이것이 한국 사회의 관행이다.
친하게 지내던 선배 역시 초음파 검사에서 장애아로 보인다는 말을 듣곤 큰 충격을 받고 낙태를 하려고 했던 적 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조언은 이것. "의사도 초음파 검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신이 아니니까요." 뒤이은 양수 검사 결과 음성으로 나와 건강하게 나은 선배의 아기 이름은 박현민. 5살인데, 건강하고 귀엽게 성장하고 있다.
이에 앞서 언급한 네번째 임신한 아이의 이름은 베토벤이다. 하지만 베토벤이 오늘날 임신되었다면 초음파 검사에서 장애아로 간주되어 낙태되지 않았을까. 열성인자를 가진 부모의 유전이 염려된다면서 아주 합법적으로 말이다.
이렇듯, 산부인과 병원의 각종 검사기계는 장애아를 낙태시키기 위해 작동되고 있다. 이 사회에서 원하는 건 비장애아이기 때문. 그러나 과학적으로 무장한 것처럼 보이는 이 완벽한 시스템도 물샐 틈을 갖고 있다.
초음파 검사에서 소위 정상이라고 간주된 태아의 100명당 4명이 크고 작은 선천성 장애를 갖고 태어나기 때문.
즉, 매년 70만 명의 신생아 중 3만명 정도가 장애아로 태어난다. 의학적인 용어로는 ''기형아''라고 한다. 참 우아한 용어다. 기형이라니.
선천적 장애아가 발생하는 이유
나아가 통계적으로 따져보면, 3만명 정도의 장애아 중 1/10은 미혼모에 의한 출산이다. 미혼모는 매년 만 명 이상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 미혼모에 의해 출산되는 100명의 신생아 가운데 30명이 장애아로 보고되고 있다.
그 이유는 낙태약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 엄청난 스트레스, 경제적 빈곤에 있다. 다시 말해서, 감내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받는 것만으로도 태아의 장애를 초래하는 것.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역학 과학센터 연구팀은 영국의 의학전문지 랜싯 최신호에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임신 중 불행한 사건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여성은 구개열, 구순열, 귀 또는 심장 기형 등 선천성 결함을 지닌 아기를 출산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거의 두 배나 훨씬 높다고 밝힌 바 있다.
이 7만 명의 장애아가 매년 불어나서 전체 장애인의 11%를 차지한다고 정부에선 보고 있다.(2005년 장애인 실태조사, 국가복지정보센터) 45년 건국 이래 세계 최고의 노동 시간과 산업재해율과 산술급수적인 빈부격차와 빈곤이란 사회적 구조 속에서 장애아 원천 봉쇄 의료 시스템을 뚫고 태어난 선천적 장애아들. 또 장애아를 키우든, 시설에 보내든, 입양을 시키든 어떻게든 이 땅에서 살게끔 헌신적으로 고민했던 부모들.
정부가 장애아를 위해 한 일은 해외 입양을 보내 외화벌이에 이용하거나, 시설에 가두어 가급적이면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이었다.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지 모른다. 이왕 태어난 거 죽일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보다 적극적으로 장애아의 낙태를 권장하고자 법률까지 제정하였다. 예컨대, HIV 양성인이 임신을 하면 보건소에서 나서 무조건 낙태를 종용한다. 그들 말마따나 ''감염율이 1%''에 불과한데.
모자보건법
제14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의사는 다음 각호의 1에 해당되는 경우에 한하여 본인과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자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동의를 얻어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1.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하고 있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②제1항의 경우에 배우자의 사망․실종․행방불명 기타 부득이한 사유로 인하여 동의를 얻을 수 없는 경우에는 본인의 동의만으로 그 수술을 행할 수 있다.
③제1항의 경우에 본인 또는 배우자가 심신장애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는 때에는 그 친권자 또는 후견인의 동의로, 친권자 또는 후견인이 없는 때에는 부양의무자의 동의로 각각 그 동의에 갈음할 수 있다.
장애를 가진 태아는 낙태되어야 하는가?
지난 2002년 9월 한국을 방문한 캐나다의 대표적 여성장애인 인권운동단체 ‘DAWN’의 대표 도린 데머스(45)와 캐시 마셜(40)은 국내엔 생소한 ‘여성 장애인의 모성권’ 문제를 진지하게 제기한 적이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회는 장애여성의 임신에 부정적 시각을 갖고 낙태를 종용합니다. 또 태아가 장애아일 경우도 낙태를 유도합니다. 고정관념과 사회적 차별이 장애여성의 모성권을 박탈하고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의식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아이를 낙태시킬 것인지, 낳을 것인지 그 선택은 여성 스스로가 해야 하고 태아가 장애아일지라도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문화일보, 2002-09-10)
캐나다 여성 장애인들의 견해는 옳다. 낙태할 것인지, 낳을 것인지 선택은 여성 스스로가 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선 이조차 선택의 권리가 없다.
모자보건법에선 심신장애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을 때엔 여성의 선택권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 이때 의사표시란 ''정상적이고 합리적으로 의견을 표한다''는 이상 야릇한 전제를 깔고 있다.
실제 한국의 의사들은 언어장애가 심한 장애인에게 정신지체 판정을 자주 내린다. 언어 장애가 심하면 의사들이 판단하는 정상적이고 합리적으로 의견을 표현할 수 없다고 간주하기 때문. 이 지독한 독소 조항에 대해 장애인계에서 침묵하고 있는 건 아주 흥미로운 현상.
장애아는 살 권리가 없는 아이들?
장애를 가진 태아의 낙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결코 바보들이 아니다. <동물해방>의 저자로 유명한 생명윤리학자인 피터 싱어는[Should The Baby Live?]라는 책에서 “매우 허약한 아이들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나 또한 싱어의 <동물해방>을 읽고 한달 간 채식주의자 행세를 한 적이 있었으니, 그가 가진 논리의 설득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생명윤리학자인 조세프 플레쳐는 “아주 작은 결함이나 가벼운 병 이상의 문제를 가진 아이는 세상에 내어보내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프랜시스 크릭은 장애아가 ''열성 유전자를 가졌다''면서 “살 권리가 없는 아이들”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정신의학자이며 커버넌트신학교 교수인 리차드 윈터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머지 않아 불완전한 아이를 낳는 것은 의학적 실패(충분히 선별하지 못했으므로) 혹은 가정과 국가에 불필요한 짐을 지우는 구시대 도덕의 산물로 보여질 것이다.”
나는 장애아가 반드시 낙태되어야 한다고 믿는 자들의 주장에 구역질마저 느낀다. 윈터 박사의 솔직한 말처럼 "국가에 불필요한 짐을 지유는 구시대 도덕의 산물"에 불과한 장애아의 존재. 바로 이것이 미국과 유럽, 일본 등지에서 1970년대까지 악명을 떨친 이른바 ''장애여성 임신금지법''의 정체인 것이다.
이들 주장의 공통점은 여성에게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근대사에서 낙태가 급진적인 슬로건이 되었던 까닭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란 측면. 선택권을 박탈하고나면 남는 건 국가에 의한 합법적인 장애아 살인 행위 뿐이다. 모자보건법은 이를 정당화시키고 있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
원터 박사는 미국과 유럽에서 장애를 가진(손가락이 하나 부족하거나, 머리가 좀 이상하게 생긴 것도 포함) 태아의 낙태율이 99%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한국의 경우 역시 이 수치와 비슷할 것 같다. 그럼에도, 장애를 가진 태아를 낙태하는 부모의 마음은 원터 박사나 피터 싱어 같은 자들의 윤리의식과는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아이가 장애를 안고 이 사회에서 생활한다는 게 얼마나 비참하고 어려운 건지 혹은 부모가 장애아를 양육하고 성장을 돕는 게 끔찍하게 힘들다는 걸 이미 알기 때문.
태어나자마자 3등 국민으로 전락하여 어쩌면 평생 시설에서 살다가, 시설장 잘못 만나서 향정신성의약품을 강제로 먹고 죽을 수 있다는 건 뻔하지 않는가.(김포장애인 시설 장애인 6명 사망 사건)
정부에서도 부모의 결정을 반대하지 않는다. 비장애아가 태어나면, 출산 휴가에 출산 장려금, 선물까지 안기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저출산 시대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얼마나 위선적인가.
장애를 가진 태아가 세상의 빛을 보든 못 보든 그건 여성의 자기 결정권에 달려 있는 건 분명하다. 또 장애아를 출산한 부모를 비난할 권리를 가진 자는 아무도 없다.
가족도, 보험회사도, 정부도 여성의 권리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물론, 대놓고 비난하진 않는다. 대신 출산비용이 제공되는 보험에 가입을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비난할 뿐.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모자보건법을 맹렬히 비판해야 한다
앞으로 꾸준히 장애아 출산 원천봉쇄 정책은 계속 유지될 것이며, 이 정책은 우생학적 철학으로 무장된 윤리학자와 의사 등 꼴통들의 논리로 정당화될 게 분명하다.
그 사이 장애아를 낳은 부모들의 무한한 희생과 열정, 고통, 슬픔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정부가 전향적인 장애인 정책을 펼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제와서 장애인 자립생활 활동보조인 제도화를 실시하려고 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장애인을 가두는 시설을 확충 중이고, 동시에 장애아 억압 정책을 펼치고 있으니 이를 조삼모사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듯.
장애인계에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모자보건법의 독소조항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고, 법률적으로 대응하는 행동이 있기를 기대한다. 특히, 여성 장애인 단체들말이다.
이훈희 기자 bomp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