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행정, 책임회피에 시설장애인만 죽어간다

서울시, 종로구청은 책임 떠넘기기에 바쁘고, 복지부 방침은 오락가락

김유미 기자

성람재단 조태영 전 이사장의 횡령혐의에 대해 이사진 해임 등을 요구하는 인권단체들의 종로구청 앞 농성이 9일째 접어들었다. 종로구청은 사회복지사업법 상의 문제를 핑계로 성람재단 임원 해임은 자신들 권한 밖의 문제라며 책임회피에 급급하며, 인권단체들의 농성에 대해서는 불법시위로 간주해 구청 공무원들이 직접 강제 철거에 나서면서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종로구청 앞 농성이 마찰을 빚으며 장기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성람재단 비리 척결과 사회복지사업법 전면개정을 요구하는 인권단체들의 종로구청 앞 농성이 9일째를 맞았다.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서울시와 종로구청의 책임 떠넘기기

종로구청이 성람재단 이사진 해임 등의 권한을 가진 이유는 이렇다. 현행 사회복지사업법 제 52조는 보건복지부 장관 또는 시·도지사 권한의 일부를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위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복지부는 이 52조와 법 시행령 제 25조에 따라 법인 설립 허가, 임원 임면권 등 법인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감독권한을 각 시·도에 위임했다. 한편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서울사무위임규칙을 개정하고, 법인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감독권을 다시 서울시 23개 각 자치구로 위임했다. 이에 종로구청은 성람재단 법인에 대한 임원 해임명령권 등 전반적인 관리·감독권을 갖게 된 것이다.


	△ 종로구청의 ''(사)성람재단 비리관련 불법시위 대책보고'' 문서. 시설비리 해결에 대한 대책은 없고 농성장 철거 대책만 마련돼 있다.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하지만 종로구청은 서울시의 업무 재위임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군·구에서 법인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감독을 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따라서 성람재단에 관한 문제도 자신들이 책임질 수 없는 영역의 문제라는 것이다.
종로구청 주민생활지원국에서 7월 작성한 ‘(사)성람재단 비리관련 불법시위 대책보고’ 자료에 따르면 종로구는 “이들 단체들(성람공투단)의 요구 사항이 우리 구에서 해결할 수 없는 내용들로 사태가 심각함에도 서울시 관계과(사회과, 장애인복지과, 보건정책과)에서는 위임사무만을 강조하며 그동안 미온적인 대처”를 했다며 서울시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종로구청이 서울시에 책임을 묻는 이유는 이렇다. 각 시·도가 법인에 대한 관리·감독권 일부를 시·군·구로 위임할 수 있지만 ‘포괄적 위임’이나 ‘임원 해임명령, 법인허가설립취소 등’ 법인 운영에 중요한 사항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복지부가 지난 2005년 발간한 ‘사회복지법인 관리안내’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러한 복지부 지침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임원 해임명령권 등 중요 관리·감독권을 서울시 23개 자치구로 재위임했다. 사회복지법인 관리업무를 합리적으로 재조정하고 사회복지법인에 대한 관리·감독의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재위임을 위한 필요한 절차는 다 밟았다. 지난해 6월 복지부로부터 법인관리업무 재위임에 관한 승인을 받았으며, 23개 자치구로부터 업무 재위임에 대한 이견도 접수했다. 재위임에 대한 이견이 없었고, 서울시는 11월 서울시사무위임규칙을 개정해 법인에 대한 중요관리 업무를 각 자치구로 재위임시켰다. 복지부와 종로구가 재위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서울시는 성람재단 문제를 오로지 종로구청의 문제로 떠넘기고 있다. 서울시는 2일 성람공투단의 면담요청에 대해 “사회복지법인 임원 해임명령권은 사회복지사업법 제 52조, 동법시행령 25조 및 서울시사무위임규칙에 의거 법인소재지 자치구청장이 모든 권한을 행사하게 규정되어 있다”며 거부의사를 밝혔다.

△ 서울시는 법인 관련 업무 재위임을 이유로 성람재단 비리 문제의 책임을 종로구청에 돌리고 있다.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복지부의 행정처리 오락가락

종로구청의 책임 회피에는 복지부의 오락가락하는 행정 처리도 한 몫하고 있다. 종로구청은 지난 7월 12일 복지부 사회정책기획팀에 ‘임원의 해임명령을 구청장에게 사무 위임한 사항이 타당한지 여부’에 대해 문의했고, 이에 복지부가 ‘법인의 일상적인 업무가 아니라 행정관청이 직접 개입해 임원의 구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항이라 시·군·구청장에게 재위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기 때문. 임원 해임명령 같이 법인 운영에 중대한 사항은 시·도지사가 책임지는 게 맞다는 것이 복지부 입장. 종로구청은 ‘(사)성람재단 비리관련 불법시위 대책보고’ 문건에서 복지부의 이런 입장을 들어 성람재단 이사진 해임은 자신들 권한 밖의 일이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3일 복지부에 확인해 본 결과, 복지부가 종로구청에 밝힌 입장은 법인 업무 재위임에 대한 일종의 원칙일 뿐, 서울시의 재위임에 대해서는 현재 규정상 문제가 없다고 했다. 복지부 사회정책기획팀 담당자는 “시·군·구가 임원해임명령권 같은 중요한 권한까지 갖는 것이 옳은 지는 다시 판단해야 한다”면서 “어쨌든 현재 규정상으로는 성람재단의 이사진 해임명령권 등 관리감독 책임은 종로구청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 담당자는 “전임자가 서울시의 업무 재위임을 승인했다”며 “전국 시·도의 법인업무 재위임 상황을 파악해 문제를 정리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피해는 시설 장애인의 몫으로

상황이 이러함에도 종로구청은, 성람재단 비리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보다 농성단을 내 쫓는데 혈안이 돼 있다. 종로구청의 ‘(사)성람재단 비리관련 불법시위 대책보고’ 자료에는 “그동안 6차례의 시위 내용으로 보아 강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어 계속되는 시위와 장기적인 철야농성이 예상되므로 야간에는 적극적인 구청 방호가 요구된다”며 농성단의 공공시설물 파손, 집시법 위반, 폭행 등 피해사태를 채증해 경찰에 고발(고소)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2일 종로구청 앞에서 열린 투쟁결의대회에서 김정하 활동가는 “종로구청이 서울시, 복지부를 운운하며 자기 책임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이 성람재단 이사장은 장애인들 주식비, 부식비를 챙겨 자기 아들을 외국유학 보냈고, 수천의 장애인들은 시설에서 꿀꿀이죽을 먹으며 고통 받아야했다”며 “당신들의 침묵은 인권침해를 방조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2일 결의대회에 앞서 종로구청 사회복지과 관계자와 면담을 진행한 박래군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는 “종로구청이 법의 맹점을 이용해 자기들의 책임을 다른 곳으로 떠넘기려 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밝혔다.

“복지부, 서울시, 종로구 모두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편, 현애자 민주노동당 의원은 성람재단 비리사건과 관련해 지난달 31일 논평을 내고 “시설이 거리가 멀고 수사권한이 없어서 감독이 어렵다는 핑계를 앞세울 것이 아니”라 “종로구청은 관할 주무기관으로서 책임 있게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현 의원은 “복지부는 임원 해임과 같은 중대한 사무에 대해 하루 속히 분명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해야 할 것이며, 서울시는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감사 등 지도감독의 책임을 가진 기관으로서 사태의 제도적인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며 또한 검찰과 경찰에 대해서도 “철저하고 공정한 수사를 해줄 것”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