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어야 하는 건 내 아이가 아닙니다”

④ 활동보조 제도화 위해 삭발한 자폐아 부모 황영애씨

김유미 기자

세계인이 독일 월드컵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꽉 막힌 가슴을 속 시원하게 뚫어주는 한 골. 세상에는 너무 많은 문제와 근심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뻥 차버리고 싶은 문제는 무엇입니까? <프로메테우스>는 월드컵 기간 동안 축구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뒤편에서 묵묵히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 편집자주


△ 지난 7일 대구 한나라당사 앞에서 활동보조인 제도화를 요구하며 삭발한 발달장애아 부모 황영애씨. 황씨의 아이 제민이는 엄마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고 했다.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이 엄마는 네가 좋아하는 머리카락마저도 너를 지켜내기 위한 도구로 써야한다니 참 서글프다! 당장 오늘 밤부터 엄마의 머리를 만지며 내 엄마의 느낌이 아닌가 싶어 깜짝 놀랄 너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터지는구나! 그러나 제민아! 엄마는 머리카락을 잘라내서라도 너를 지켜야 하기에 잘려나가는 이 머리처럼 나약한 마음과 눈물과 한숨, 걱정은 내버리고 새 각오와 다짐을 하련다.”
지난 7일 대구에서 활동보조인 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며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 등 31명이 삭발했다. 이 중 장애인 부모는 4명으로 이들은 모두 정신지체나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고 있다. 제민이 엄마 황영애씨(48세)도 이날 아이를 위해 삭발을 감행했다.
제민이는 발달장애 1급의 남자아이로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됐다. 제민이 엄마 황영애씨는 아이 교육을 위해 학급 정원이 적은 학교를 찾아 대구 남산동으로 이사를 했다. 제민이는 현재 한 학급 정원이 25명인, 특수학급이 설치된 일반학교에 다니고 있다.
황씨는 제민이가 다섯 살 되던 해에 아이에게 발달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의사로부터 발달장애 1급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장애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때였다. 그녀는 제민이를 다른 아이들처럼 길러내야겠다는 마음에, 대구대학교에 입학해 장애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행동치료, 언어치료까지 공부했지만 아이가 갖고 있는 장애 자체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아이가 가진 장애는 고치거나 없앨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내가 전문적인 공부를 하면, 아이를 달라지게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건 아이는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었지요. 그 땐 아이를 뱃속으로 다시 집어넣고 싶을 정도로 처절한 심정이었습니다.”

아이는 바뀌지 않는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나와 우리 사회


	△ 함께 활동하고 있는 부모회 동료가 황씨를 위로하다 되레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하지만 아이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아이가 바뀔 수 없는 것이라면, 나와 이 세상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의 행동을 부자유스럽게 만드는 제도가 바뀌어야 하고, 장애 때문에 학교나 사회에서 왕따 당하는 이 현실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녀의 생각이 이렇게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장애인 부모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지난 2004년부터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아이를 바꾸는 것이 희망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제도를 바꿔내는 것이 희망’이라고 이야기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앞으로도 힘든 일이겠지만 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와 제도가 바뀐다면 아이는 지역사회에서 스스로 살 수 있을 것이고, 장애인 가족들도 더 이상 쪼개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황씨는 그렇게 아이와 가족과 함께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활동보조인 서비스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이유에서 대구시청 앞 활동보조 서비스 제도화 농성에 참가하고 있는 것.
“그동안 활동보조인이 필요한 대상에 중증의 뇌병변, 지체장애가 중심으로 이야기되고 정신지체나 발달장애인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 아이들은 겉이 멀쩡해도 자기결정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보조가 절실히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정신지체나 발달장애가 정말 중증장애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음 편히 아파봤으면 좋겠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2005년 장애인실태조사 결과 발달장애, 뇌병변장애, 정신지체인의 절반가량이 일상생활에서 남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달장애인 55.4%가 일상생활에서 ‘거의 남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대부분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며, 뇌병변장애인의 경우 51.3%, 정신지체인의 경우 44.5%가 일상생활에서 ‘거의’ 혹은 ‘대부분’ 남의 도움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황씨의 경우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교사로부터 아이가 없어졌다는 전화를 받거나, 아이가 어디에 들어가 나오지 않으니 학교로 와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고 했다. 그녀는 “우리 엄마들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도 늘 대기상태로 있습니다. 학교에서 언제 연락이 올지 모르니까.. ”라고 이야기했다.
학교를 마친 후에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돌발행동이나 퇴행을 줄이기 위해서는 치료가 필수적인데 아이를 언어치료실이나 물리치료실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줄 사람이 없으니 황씨가 아이를 데리고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생활이 이렇다 보니 직장에 나가 일을 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황씨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세 가족이 생활하고, 아이 치료비를 대다 보면 저축할 여유가 전혀 생기지 않는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생활은 나날이 빠듯해지고 있지만 대책이 없는 것이 문제다.

“활동보조인이 있어서 아이와 오후 치료실에 가는 것 정도라도 대신해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아이 장애 이후로 한 번도 마음 편히 아파본 적이 없습니다. 아플 때 병원에 가고, 마음 편히 아파보는 게 제 소원입니다.”
끝으로 ‘아이가 어떤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냐’고 묻자 그녀는 “우리 아이는 가끔 동네 놀이터에서나, 제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다른 아이들한테 맞고 돌아오곤 합니다. 아이를 때린 친구들을 찾아가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그 아이들은 우리 애가 바보라서, 하는 짓이 재수가 없어서 때렸다고 이야기해요.
이런 일들은 사람들이 세상 속에 내 아이 같은 장애인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내 아이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도 살고 있고, 함께 살아가야 할 사회 일원이라는 것을 인식해 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다.

너의 미래를 위해
-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 황영애

너를 가졌던 날의 기쁨! 매일 너를 목욕시키고, 엉덩이를 토닥이고 만져볼 수 있는 그 사랑스러움의 극치를 어떻게 표현하랴! 잠자는 네 모습. 부스스 잠에서 깨어나는 네 모습. 어느 한 순간도 사랑스럽지 않은 때가 없었다.
그런데 네게 장애라는 단어가 붙고 난 후부터 지금까지 엄마의 가슴 속에는 걱정과 눈물, 한숨, 분노의 사연들이 너무 많아 더 이상 채울 자리가 없구나. 이제부터 엄마는 널 위해 어떤 것을 꿈꾸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겠니. 세상은 네가 보호받을 수 없게 되어있고, 지금의 장애복지제도로는 널 지켜낼 수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니.
이대로라면 엄마는 차라리 널 자궁 속에다 다시 꽁꽁 숨겨두고 세상 그 무엇도, 세상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싶다. 그러면 엄마 품에서 맘껏 행복하고 맘껏 자유롭지 않겠니. 그런데 너는 이미 태어나 세상밖에 있고, 이 엄마는 어찌해야 하겠니. 아들아! 너는 정녕 깊고 깊은 장애라는 또 다른 세상에 박혀 스스로 나오지도 못하고 엄마의 힘으로도 꺼내줄 수조차 없단 말이니?
이 엄마는 네가 좋아하는 머리카락마저도 너를 지켜내기 위한 도구로 써야한다니 참 서글프다! 당장 오늘 밤부터 엄마의 머리를 만지며 내 엄마의 느낌이 아닌가 싶어 깜짝 놀랄 너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터지는구나! 그러나 제민아! 엄마는 머리카락을 잘라내서라도 너를 지켜야 하기에 잘려나가는 이 머리처럼 나약한 마음과 눈물과 한숨, 걱정은 내버리고 새 각오와 다짐을 하련다.
스스로를 지켜낼 수 없게 태어난 너를 위해 이 엄마가 달라지고, 이 사회가 달라져서 네가 세상에 맘 놓고 발 들여 놓을 수 있게 너를 묶어 놓은 낡은 제도들을 하나하나 바꿔 나가련다. 그래서 미래의 세상에서는 네가 엄마 자궁에서 세상에 처음 나올 때처럼 세상 밖으로 나가 네 자유를 맘껏 펼치며 살아가도록 바꿔 놓으련다.

*황영애씨가 7일 삭발을 앞두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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